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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질병 뒤에 도사리고 있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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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는 진실로
경이로운 탈 것입니다.
영혼이 거주하는 사원입니다.
당신의 육체는
수백 년, 수만 년을 견디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당신은 그럴 리 없다고, 믿지 않겠지요.

당신의 육체는
이러한 차원의 현실을 경험하기 위한
탈 것입니다.

육체는
그 자체로 완전하며,
스스로 세포 차원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의 육체는
당신의 행성과 더불어
놀라운 공명을 일으킵니다.
당신의 육체가 없이는
이 행성이라는 옷감도 짜여질 수 없습니다.


당신들은 육체를 경멸시하곤 합니다. 매우 영적인 사람들 중에도 육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육체를 제거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육체가 낙원에 도달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느낍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들의 육체를 선택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합니다. 육체 또한 신성의 표현인 것입니다. 육체가 없다면 많고 많은 기쁨들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을 겁니다. 육체는 수많은 변화를 겪어 왔는데, 그 중에는 공해와 더불어 생긴 변화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육체는 정말로 놀라운 도구이고, 경이로운 실체입니다. 탄력있고, 창조적이고, 야성적인 창조성을 지닌 실체.


세포적인 차원에서도 육체는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육체는 겉으로 표현된 영혼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그건 대단한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이지요. 당신이 만약 당신의 육체를 지니지 않았다면, 이 3차원 세상은 매우 따분했을 것입니다. 당신은 육체에 대해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나요? 당신 자신을 반추해 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육체와 당신 자신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요?


당신의 육체는
항상 당신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바로미터 같은 겁니다.
육체의 질병은
자아의 불편함을 가리켜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육체가 불편을 호소한다면 그 부분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못 흥미로운 일이 될 겁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에 대해 알면 알수록,
당신의 육체는 당신의 상태에 대해 더 많은 말을 들려줄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 더욱 더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몸에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몸은 그렇게 연약하지 않습니다. 그리 쉽사리 쓰러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기쁨 속에 있다면, 당신의 몸은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설령 독을 먹었을지라도 당신의 몸은 자동적으로 해독 작용을 할 것입니다.

당신이 육체적으로 아프게 되는 원인은 감정의 불편함 때문입니다. 당신의 육체는 감정의 편안함이나 불편함의 표현입니다. 신념체계의 반영이기도 하지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 자기 주변 환경에 대한 신념 말입니다. 당신이 안전한 우주에서 살고 있지 않다고 믿는다면, 그땐 우주의 모든 것이 그런 믿음에 맞춰 재배열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자신을 희생자라 믿으면, 당신은 희생자가 될 겁니다. 인류는, 자신들의 몸이 아픈 것은 자신들이 고통을 반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삶을 부조리한 것으로 믿으면, 자신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고 스스로 가치가 없다고 믿으면, 삶은 그러한 믿음을 당신에게 반영합니다. 삶은 그러한 상황을 창조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 자신을 뭔가 결여된 인간으로 판단하도록 유도합니다. 삶 자체를 모순에 가득 것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삶 속에서 고통이란 이겨낼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건너뛸 수 없는 벽 하나를 만들어 낸 셈입니다.

누구나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면 그렇다는 겁니다. 불가항력을 느끼게 되면 당신은 스스로를 격리시킵니다. 슬픔에 대한 두려움은 언젠가 당신에게 상처를 입혔던 사람을 멀리하게 만드는 겁니다. 불가항력의 벽을 만들어 그런 느낌을 경험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그런 벽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스스로가 만든 분리의 장벽 때문에 두려움과 감각을 꼭꼭 가두어두려 하고, 감정 따위는 병에 담아 코르크 마개로 막아두려 하지만, 그렇게 담겨 있을 리 없습니다.

당신이란 존재는
감정을 품고 있는 생각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표출되지 않으면,
몸은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하라고 촉구하고자
불편함을 창조합니다.

그리하여
불운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되는 겁니다.

당신들 시대의 가장 큰 질병 중 하나인 에이즈(AIDS)를 예로 들겠습니다. 이 병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자기 스스로 이 병을 창조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아무도 질병에 '걸릴' 수는 없습니다. 병이 그런 식으로 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몸이 약해지면 지구를 떠돌던 아주 작은 물질이 사람들의 몸에 침투해 들어오는데, 이 더럽고 작은 바이러스에 공격당한다는 것이 당신들의 보편적인 믿음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희생자가 아닙니다. 당신이 창조한 겁니다. 그런 상황을 창조하는 것도 당신이고, 거기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감정을 표출하는 것도 당신입니다.

당신네 사회에서는 동성연애자를 굉장한 흠집을 지닌 사람들처럼 받아들이는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 안에는 남성적인 요소와 여성적인 요소가 나란히 짝하여 들어 있고, 그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그것이 당신들이 감정적 진실입니다. 자신들의 몸에 화학물질을 주사하는 사람들 또한 이 끔찍한 바이러스에 의해 쉽게 공격받는다고들 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죄의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수용, 사랑, 도움의 부족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어린 시절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희망과 기쁨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질병(dis-ease;불편)이 오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지요.

에이즈는, 이 행성의 정부들 중 하나가 영혼을 말살시킬 목적으로 창조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정부의 대리인으로 하여금 배포하게 한 것이지요. 그것이 가져다준 결과를 보세요.

유년기의 질병으로 분류해 놓은 것도 있지요. 이 질병을 막는답시고 모두가 예방접종을 하려고 분주히 뛰어다닙니다. 의학계라는 것도 있고요. 임신한 여자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신체 검사를 받으라고 권하는 것은 정말 이상한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현명한 처사라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병(dis-ease)을 찾기 위해 검사를 한다고요?

자신의 현실은 절대적으로 자기가 창조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감정을 품은 당신의 생각이 물질을 창조하고 물리적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을 이해할 때 말입니다. 그때는 여자들이 매달 병을 알아보려고 신체검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현명치 못한 일인가를 깨달을 수 있겠죠. 그건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닙니다.

세상에 만연한 질병에 대항하기 위한 예방 접종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격려하고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일뿐입니다.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하지만 당신들도 아시다시피, 집단의 현실, 집합 의식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약을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건 나름대로 효과가 있는 인류의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더욱 조화를 이루고, 현실과 더욱더 편안한 관계를 이루고, 자신의 현실을 어떻게 창조하는지 보다 잘 이해하게 되면 될수록, 점점 더 약이 필요 없음을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약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약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닙니다. 벗이여, 이 점에 대해서는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약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현실과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지적했을 뿐입니다. 약 또한 유효한 것이며, 신성의 표현입니다. 신성의 표현이 아니라면 여기 존재하지도 않을 테니까요.


당신의
몸이 불편하거든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으십시오.
몸의 질병 뒤에 도사리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가를.
그런 다음 그 감정을 껴안으세요.
실제로는 육체적 질병이 되겠지요.
병이란 단지
가르침을 위해 거기 있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껴안음으로써 당신은 변화를
창조하게 됩니다.


몸의 불편을 비롯한 당신의 온갖 고뇌를 엑스터시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먼저, 당신이 절대적으로 자신을 현실을 창조했음을 알고 책임을 지세요. 당신의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 당신의 개인적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공동 창조물입니다.


두 번째는 판단과 하나가 되는 겁니다. 자, 어떻게 판단과 하나가 되지요? 당신이 판단에 길들여져 있음을 알고, 판단 또한 유효하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판단 역시 신성의 표현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판단 역시 신성의 표현입니다. 왜냐 하면 당신의 판단 역시 존재하니까요. 그러니 변화를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껴안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겁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됨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나는 판단에 길들여져 있어. 나 자신도 판단하고, 상황도 판단하지. 나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판단하길 너무 잘 해.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도 그것을 창조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야. 배움을 얻기 위해서 그런 상황을 내가 창조한 거야."

이런 식으로 조화를 이루어내는 겁니다. 고통 속에도, 당신이 그토록 혹독하게 판단했던 고통 속에도, 지혜라는 진주가 감추어져 있음을 아는 겁니다.


벗이여,
판단을 사리분별과 혼동하지 마세요.
그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판단은 다음과 같이 말하죠.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좋고, 이건 나쁘다',

사실은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습니다.
존재할 뿐이죠.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벗들이여,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증상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들은 판단이 쓸데없는 것인 줄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탈입니다. 판단이란 '나쁜'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겁니다. "판단해선 안 돼. 판단은 나쁜 거니까. 판단을 하면 그건 깨달음이 아니야."

어리석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이여, 판단을 나쁜 거로 만들면, 또 다시 원래의 굴레 속으로 곧장 되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니 어리석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판단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판단 또한 유효합니다. 판단은 당신 자신의 신성한 국면이고, 판단을 하지 않는 변화를 창출하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껴안는 것입니다. 당신이 판단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판단하는 자신을 기꺼이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 같은 변화를 바라고,
판단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을
당신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게 되면,
당신은 변화를 창조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치 없다고 여기게 되면,
판단은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진실로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당신이
가치 없다고 여기는 것에
당신은 오히려 힘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저항하는 것은 지속된다는 것을.
당신은 당신이 가치 없다고 여기는 그것을 정확히
끌어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창조물에 책임을 지십시오.
판단과 하나가 되어, 그 느낌을 받아들이십시오.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립니다.
고통은 느낌이 아닙니다.
고통은 느낌에 저항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들면,
당신 복부에 억압되어 있던 에너지가 방출되면서
태양신경총으로, 가슴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토록 간단한 겁니다.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허용하는 겁니다.
그 허용 속에서 연금술이 일어납니다.

책임을 지십시오.
판단과 하나가 되십시오.
느낌을 느껴 보십시오.
그것이 전부입니다.

당신이 곧 전체라는 걸 이해하기 전까지는, 영적으로 성인이 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벗이여, 당신이 곧 전체라는 건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닙니다. 당신이 곧 전체라는 충만감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당신이라는 존재의 조각들을, 당신 존재의 모든 면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 자신이 그토록 가혹한 심판관 노릇을 즐긴다는 사실마저도 다 받아들여서, 당신의 진정한 자아 안에 포용해야 합니다.

고통스러운 모든 상황을 다 받아들이십시오. 현재의 고통이든, 해묵은 과거의 지나가 버린 고통이든, 다 받아들이세요. 당신이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있다면, 그것은 결코 처음 당하는 일이 아님을 상기하십시오. 당신은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야기의 줄거리가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어떠한 방식으로 그런 상황을 끌어들였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 스스로 겪어 보고 끌어안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의 진정한 자아, 위대한 자아가 그 모든 상황을 불러온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 자신의 모든 면을 즐길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당신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결코 전체가 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벗이여, 당신이 전체로서 존재할 때, 그것이 곧 귀향입니다.

고통을
일으키는 다른 원인은 없습니다.
고통이라 불리는 저항을 창조하는 건 바로 판단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고통은 누적됩니다.
수억겁을 통해,
수많은 생애를 통해,
당신은 그것을 습득해 왔습니다.
당신들 모두 그것에 매우 익숙해 있습니다.

당신들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 보십시오. 어린 시절의 언제인가 당신은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대단한' 어떤 일일 필요도 없습니다. 아주 간단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일에선가 당신은 '돼먹지 못한 것'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가슴속에선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 소리는 너무 작습니다. '너는 아름답지 않다'는 소리, '너는 어리석다'는 소리가 가슴속의 속삭임보다 압도적으로 큽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충분치 않은 존재로 판단하게 되고, 자신을 충분치 않다고 판단하게 되면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장함에 따라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되지만, 다룰 줄 안다는 게 무엇을 뜻합니까? 당신 주변에 불가항력이라는 벽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을 태세를 갖추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상처를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더 높고 더 두터운 벽을 쌓게 됩니다. 당신이 성인이 될 무렵에는 그 벽이 매우 높고 두터워져서,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 보이지 않게 됩니다. 당신은 감추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걸 두려워하게 됩니다. 마음을 보여주었다간 상처받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고통받을 때마다 그것을 '극복'하지만, 고통은 다시 반복하여 나타나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 더, 더 당신은 자기 자신을 판단하게 되고, 다른 인간에 대해서도 더, 더, 더 판단하게 됩니다. '나는 정부의 희생양'이라는, '타인들에 번번이 당하기만 한다'는 관념에 갇히게 되고, 그것은 두려움이 커질수록 더 심해집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정확히 되비추어 줄 상황과 사람들을 더, 더, 더 자기 자신에게로 끌어당기게 되는 겁니다. 자, 이제 그것어 어째서 돌고 도는 원이 되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당신들 모두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나는 두렵다', '나는 상처받고 있다'고 말하길 두려워합니다.
'나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실은 절망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길 두려워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당신들은 입 밖에 낼 수 없는
가슴속의 상처로 인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절망을 바라보길 두려워하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길 두려워합니다.

당신들은 자신이 충분치 않음을 두려워하고 있지만, 감히 그렇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답을 알고 있는데 자기만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들의 마음 은밀한 한켠에서는 자기만 못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기만의 은밀한 생각들과 자기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행위들, 자신의 삶 구석 구석을 돌이켜보고는 자신을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단정해 버리고 자신은 결코 '저기 저곳'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들이 살아가는 행태가 이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당신들은 모두 완전함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자기 자신이 본래 신성의 표현임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당신의 본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신들은 만유(All That Is)의 생각 자체, 근원(Source)의 생각 자체라고 말해 주면, 당신들은 즉시 '만유'라는 것을 인격화시켜 생각해 버립니다. 우리가 신/여신이라고 말하면, 당신들은 즉시 인격화된 신이 존재한다고 상상합니다. 그것은 제1원인(原因)의 본질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겁니다. 제1원인은 진실로 인격화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만유'라고 하는 것이 결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님을 진실로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당신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 속에서 '만유'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
모두가 되고 싶어하는,
그토록 갈망하는 완벽한 존재라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분열(이원성)을 만들어냅니다.
당신이 완벽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소위
완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당신은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끝날 수 없으며,
지금 이러한 현실 차원에서도,
다른 차원의 현실에서도 이 점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이 일단 끝나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모든 것은 창조의 동기를 지니고 있고, 성장과 확장의 상태에 있습니다. 모든 것, 모든 것이 다 그러합니다. 당신 몸 안의 모든 세포도 창조성으로 꽃피어나고 있으며, 가만히 멈춰 있지 않습니다. 가만히 멈춰 있는 분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존재하지도 않을 테니까요. 극미(極微)의 세계를 보든 대우주를 보든, 당신의 우주 가운데 어느 것 하나 가만히 멈춰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완벽한 완성품이 있으리라고 믿고, 그것을 그토록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이 깨달은 스승이 된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모든 것이 다 끝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말씀드리죠.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의 차원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제1원인의 에너지는 가만히 멈춰 있는 법이 없습니다. 계속적으로 확장하고 있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여기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고,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니 바로 보고,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당신은
신성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당신은 이미 깨달은 존재입니다.
당신이 잊고 있을 뿐입니다.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습니다.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판단하지 마십시오.
벗들이여, 판단하지 마십시오.
저 위에서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지켜보고 있는
신 따위는 없습니다.


우리는 자주 말하곤 합니다. 인류는 노인이 되어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신의 개념과 더불어 성장한다고. 이러한 신화를 내팽개칠 만큼 지적으로는 성숙했을지 몰라도, 당신들 모두의 가슴속엔 아직도 저 구름 위에서 자신에 대해 기록표를 작성하고 있는 신의 이미지가 남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내가 하늘을 다 헤집고 다니며 살펴보고 또 살펴보았는데, 그런 신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신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 자신이야말로 위대한 신이요 여신입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본래 모습입니다.


가장 훌륭한 스승은
여러분의 본성 안에 있습니다.
당신들 행성의 자연적 유산에 마음을 쏟으면 쏟을수록,
당신의 정원, 당신의 창조물들, 당신의 바다,
당신의 하늘, 당신의 계절,
이런 것들에 마음을 쏟으면 쏟을수록,
당신은 더욱 더 이 세상의 리듬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것이 곧 당신들의 참세상이지요.

자신의 육체와
사이좋게 지내면 지낼수록,
육체와 마음 사이의 분리감이 줄어듭니다.
자신의 물리적 신체,
당신의 몸의 구조가 실은
우주의 축소판임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몸은
당신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몸에 병(disease)이 생겼다면,
그것은 당신이 감정적으로 불편(dis+ease)하다는 뜻입니다.
모든 물리적 현실은 다 마음의 반영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조화를 이루면 이룰수록,
당신은 자신의 육체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됩니다.

이러한 깨우침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당신은 당신 자신의 본래 모습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게
됩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되찾기 시작하는 겁니다.
전체로서의 진정한 '나\로 통합되기 시작하는 거지요.
벗이여, 변화를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껴안는 것입니다.

껴안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모든 면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하세요.
사랑의 표현이 아닌 것은 모두 다 두려움의 표현임을
진정으로 아시기 바랍니다.


- 자니 킹 / 가슴이 노래부르게 하라 An Act of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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