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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竹)와 道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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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竹)와 道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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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람의 마음은 외모만 보고는 헤아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것은 산이나 강보다 더 험하고 하늘을 알기보다 더 어렵다는 일이라 모름지기 경건해야 한다.

사람의 진솔한 감정은 꾸며 낼 수는 없는 것이며, 배우가 웃고 우는 것은 연기이지 배우 스스로의 감정은 아니다.

사람이 논에 심은 벼를 빨리 자라게 하려고 뽑아 올리면 그 벼는 말라 죽고 만다, 그것은 그 벼가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상가나. 예술가. 학자는 부모의 지시나 강요에 의해서 는 결코 될 수 없다, 스스로 뜻을 세워 평생을 정진한 사람만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를 그들은 꾸준히 개척한 것이다.

사람은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릴 줄 모르면 사람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들 자기 말은 옳고 남의 말은 그르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 따라 오늘의 옳음이 내일 되면 그름이 되고, 어제의 그름이 오늘은 옳음이 되니, 과연 그 누가 제대로 가릴 수 있단 말인가, 허허로운 마음에는 본디 옳고 그름이 없는 것이다.

옛날부터 道를 이야기하는 데는 대나무가 빠질 수 없는 가 보다.

竹色春秋堅節義 (죽색춘추견절의)
/ 봄 가을 변함없는 대나무 빛으로 절개를 따지고
溪流日夜洗貪婪. (계류일야세탐람)
/ 밤낮없이 흐르는 시냇물로 탐욕을 씻네.
心源螢靜無塵態 (심원형정무진태)
/ 마음속 밝고 고요하여 티끌로 더렵혀진 꼴 없으니
從此方知道味甘. (종차방지도미감)
/ 이에서 비로소 도의 참맛 달콤함을 알게 되었네.

이글은 고려 말 학자 길재(吉再)가 읊은 술회시(述懷詩)이다.

당나라 백거이(白居易)는 정원에 대나무를 심고 가까이에서 대나무의 군자적 덕성을 배우려 했고, 송나라 소 식(蘇軾)은 정원에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속되어 진다했으며, 청나라 이방응(李方膺)은 사람의 속병(俗病)을 고치는 데에는 대나무가 제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당나라 사공 도(司空 圖)는 시를 논함에“맛 밖의 맛(味外之味)”을 대나무에 비해 강조하기도 했다.

송나라 蘇 軾은 대나무는 눈보라가 몰아치거나 낭떠러지 험한 돌 틈에서 자라면서도 절개를 잃지 않고, 무성하게 자라되 교만하지 않으며, 뜻대로 뻗지 못하고 초췌해도 비굴하지 않으며, 무리 속에 있거나 홀로 있을 때를 막론하고 기대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사람과 대나무를 함께 생각해보면 마음에 와 닿는 게 있다, 인생이란 긴 여정의 한 시점에서 현재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 보며 원망도 하지도 않고 좌절하지도 않으면서 마음껏 노력을 다하는, 땀 흘리는 가운데 보답 받게 되는 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즉 正眼(본질의 깨달음)이 열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과 스스로의 뜻이 일치가 되므로, 삼매(三昧)가 되어 뜨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일에 몰입할 때는 못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선가(禪家)에서는“백 척(百尺)이나 되는 낙락절벽에서 한 발짝 쑥 내디딜 때 진정으로 활로가 열린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道의 맛을 참으로 알고자 한다면, 참으로 道(진리.참된 행복)를 얻고자 한다면, 일체의 차별심(差別心)을 사정없이 내려놓고 無心의 세계로 뛰어 드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서 그대 자신이 곧 道이며, 道의 맛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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